'전 지구적 자동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도둑질해야 하나?'
유장우
- 메켄지 워크(McKenzie Walk)의 『해커 선언』 (A Hacker Manifesto,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으로부터 -
유장우
- 메켄지 워크(McKenzie Walk)의 『해커 선언』 (A Hacker Manifesto,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으로부터 -
“우리가 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가 창조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다른 이들의 이익에, 우리가 홀로 발견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을 독점하는 국가와 기업에 저당 잡힌다.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1)
전 지구적 자동화 사회로의 전환은 기존의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17년 매킨지 글로벌 인스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의‘기술, 일자리 그리고 노동의 미래’보고서 발표에 따르면 로봇이 인간이 수행했던 모든 노동 중 45% 이상을 대체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 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더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가 자동화되었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기업의 자동화를 촉발함으로써 전 세계의 모든 상품생산 비용을 낮추고 있고, 가상세계시대로의 진입으로 물리적 노동의 필요성은 감소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노동과 소비가 중첩됨으로 인해 명확하게 여가와 노동의 영역을 분리하기 어려워졌다. 개인이 여가 시간에 접속한 소셜미디어에서 누르는‘좋아요’와 피드에 업로드하는 글, 사진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업 경제의 동력원이 되었고, 접속한 웹페이지의 데이터는 마케팅 자원이 되며, 플랫폼 기업은 이를 광고회사들에 판매하여 자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지털 경제의 작동방식은 소셜미디어 사용자를 그 결과물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여가 시간 동안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며 플랫폼 기업의 이익 창출에 이바지한 개인이 오히려 착취당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방식의 고용자/노동자 관계에서 유래된 계급 관계 또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2004년에 매켄지 워크(McKenzie Walk)가 발표한 『해커 선언(A Hacker Manifesto)』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예견한 듯, 새로운 지배계급인 벡터 계급(vectoralist class)과 대항 계급인 해커 계급(hacker class)을 상정하고 다가올, 혹은 이미 도래한 시대의 계급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워크는 그녀의 책에서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출현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벡터 계급과 해커 계급을 상정한다. 벡터 계급(Vectoralist class)은 전통적인 자본가와 노동자 관계에서 확장된 계급으로“우리 시대에 새로 출현하는 지배계급”2)이라 정의한다. 벡터 계급은 비물질적 차원에 속하는 정보재(information stock), 정보의 흐름(flow), 정보의 분배 수단(vector)을 재화의 가치로 추출(abstraction)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계급을 뜻한다. 벡터 계급은“특허와 저작권은 모두 창작자가 아니라 이러한 추상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을 소유한 자신들의 손에 귀속시키며, 지적 재산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독점을 공고히 함에 따라 해커 계급과 점점 더 계급적으로 대립하게 된다.”3) 또한, 지식재산권,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을 독점화함으로써 정보를 사유화하고 이를 재화로 치환시킨다. 워크가 이 새로운 지배 계급을 벡터 계급이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자본가가 상품생산을 위한 물질적 수단을 통제하고, 목축인이 식량 생산 수단을 통제하듯이 추출물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벡터를 통제하기 때문이다.”4) 이에 반해 해커 계급(hacker class)은 자기 스스로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자, 웨트웨어(wetware),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을 생산하는 집단이다. 또한, 벡터 계급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생산 수단을 박탈당하지 않은 계급을 뜻한다. 해커 계급은 “예술에서, 과학에서, 철학에서, 문화에서, 데이터가 수집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지식 생산과 정보가 추출될 수 있는 곳에서, 세상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 그 정보에서 생산되는 곳에서” 5) 새로운 가치를 생산한다. 이것을 통해 정보재가 벡터 계급에 의해 상품화되고 사유화되는 것에 저항하며 무료 소프트웨어 운동 등을 통해 벡터의 통제권에 대립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책이 발간되지 17년이 넘은 지금 워크의 이러한 계급론적 문제의식은 어쩌면 더욱 희미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1985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중심인물인 리처드 매슈 세틀먼(Richard Matthew Stallman)의 GNU (`GNU's Not Unix) 선언문 이후 소프트웨어의 본연의 생산방법과 정보 공유 및 유통 방식을 되돌리고자 했던 해커들은 점점 그들의 대안적 성격을 잃어 갔다. 해커들은 기업의 보안과 정보망을 지키는 화이트해커들로 변모했고, 정보의 공유와 오픈소스 방식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자본 이윤 추구를 위한 기업의 철학이자 생산 논리로 전락했다. 현재 해커는 하나의 계급으로 또는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확장되고 있는 디지털 세계와 그에 따라 변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공명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워커가 말하는 벡터 계급의 영향력이 더욱더 공고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재에 와서 대립되는 두 계급적 층위의 간격이 좁아져 두 계급을 특정하던 기존의 차이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이렇게 책이 출간된 시점뿐만 아니라, 변화된 현재의 사회에서도 워크의 논의가 유의미한 지점은 벡터 계급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재가 우리의 잉여 시간을 추출하고 이를 자발적 노동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야기된 새로운 노동의 문제는 개인의 두뇌 노동을 상품화하여 재화 가치로 전환시켜 개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산단계에 종속시킨다는 점을 미리 예견해 둔 것에 있다. 이에 대해, 델러스 스마이드(Dallas Smythe)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수용자에게 판매(selling)될 뿐만 아니라, 수용자 자체가 상품으로 생산되고 거래된다는 ‘수용자 상품론(theory of audience commodity)’6)을 통해 이 상황을 예측한 바 있다. 한편, 조너선 크래리(Jonathan Crary)는 그의 책 『24/7 잠의종말(24/7: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에서 자본주의 팽창에 따라 쉬지 않는 노동의 현실에 처한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며“인간의 삶에 필연적인 불변의 요소로 보이는 것의 대부분 –배고픔, 목마름, 성욕, 그리고 최근에는 교우 관계에 대한 요구- 은 상품화되거나 금융화된 형태로 개조되어 왔다”7) 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우리의 삶과 그에 수반한 행위의 대부분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해 상품화되고, 특정 플랫폼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무화된 노동의 조건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미시화된 벡터 계급의 영향력에 적응된 개인이 해킹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새로운 대안을 기획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세계가 도래할 경우, 우리의 행위와 감각까지도 동기화되어 벡터 계급의 지위를 강화할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은 개별 주체를 벡터 계급의 체제에 동기화된 생산품이자 정치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켜 그 체제 밖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개별적 삶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은 기술과 디지털 사회가 약속하는 유토피아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전 지구적 자동화 사회 경제 체제에서 개인의 여가 시간에 이루어지는 간헐적 노동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 추상적 재화의 흐름인 정보의 유통경로를 독점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벡터 계급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킹하여야 하나? 불법으로 여겨지는 해킹이 이처럼 새로운 방식/차원의 저항 도구로써 활용될 때, 법과 윤리의 전통적 범주는 어떠한 방식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는가? 이 모든 문제의 대안은 어디서부터 그 출발점을 그려보느냐에 있다.
위의 질문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로서 2021년 하반기에 중국에서 시행된 중국 내 온라인 플랫폼 업계와 사교육에 대한 규제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플랫폼 업계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등 대형 IT기업들이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등 디지털 경제 대부분 영역에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며 시장지배적 지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의 여러 플랫폼 기업과 마찬가지로 검색 엔진, 전자상거래, 메신저 서비스와 같은 주력사업을 기반으로 하여 디지털 시장을 선점한 후 수집된 대규모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핀테크, 헬스케어 산업까지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중국은 2021년 상반기부터 준비한 빅테크기업에 대한 규제를 하반기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EU, 미국 등의 국가들도 최근 자국의 빅테크 기업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거나 규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세계적인 추세로도 여겨진다. 이같은 규제 정책은 빅테크 기업들의 독과점과 불공정 관행을 감독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IT산업 분야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다. 또한, 이러한 중국 정부의 조치는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다루는 정보가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정부가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로 강화되는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 권력을 억제하고 핵심데이터에 대한 사이버 주권 주의를 견지하여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국가의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중국 중앙 정부의 포석이 깔려있다. 이러한 빅테크 기업의 규제와 동시에 중국 정부가 시행한 여러 규제 중 사교육과 게임에 대한 규제를 비슷한 시점에 시행했다는 것으로 서로 다른 산업 분야 간의 밀접한 연결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2021년 7월 24일 중국인민국무원(中華人民共和國國務院)을 비롯한 당정 기관들은 ‘의무 교육 단계 학생 숙제·외부 학습 부담 감소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에 따르면 의무 교육에 관련된 사교육 행위를 금지하거나 축소하고, 사교육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 또한 금지했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는 급속히 늘어가는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 저하되는 출산율을 막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21년 8월 30일 온라인 게임심의 및 미디어 감시기구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國家新聞出版廣電總局)은 관영 신문인 신화 통신을 통해 온라인 게임을 ‘영혼의 아편’으로 묘사하며 청소년들이 주말과 공휴일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에만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안을 발표하였다.
이 같은 규제 정책은 중국의 특수한 정치 경제체제에서만 시행할 수 있지만, 교육과 가상세계를 다루는 게임에 대한 중국의 규제는 정보의 재화 가치가 벡터 계급에 집중되고 전통적 방식에서의 계층 이동의 사다리인 교육에 대한 불평등이 사회주의 체제가 지향하는 이념적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위기감의 발현으로 보인다. 이렇게 벡터 계급이 가진 권력을 다시금 국가권력으로 귀속시키면서 이념적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반추해 보면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계급 관계가 한 쪽으로 급속히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재화의 벡터 영역이 현시대 경제의 작동방식과 계급 관계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비물질적 재화의 이동은 표면적으로 평등한 디지털 낙원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계층 관계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규제 산업의 공통점들은 비물질적 차원의 노동을 넘어 개인의 여가, 사회적 가치, 미시적 생산 형태의 움직임까지 벡터 계급 권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에 대한 보상 체계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까? 무너진 사다리 형식을 재건할 수 있는 대안적 차원의 창작자로서 해커들을 불러온다는 것은 이제는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까?
이처럼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우리의 두뇌활동과 비물질적 영역의 노동 출발점으로서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국가 구성원들의 공통된 도덕적 기반과 가치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다양한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을 배양하는 데에 주력해왔다. 공교육 시스템은 여기에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기능이 덧붙여져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지식을 갖추는 역할이 추가된 것이다. 이 책에서 워크는 교육에 대한 급진적이며 정치적인 입장을 표출한다. 그녀는 교육을 기술한 장의 첫 문단에서 “교육은 노예제이다. 교육은 마음을 사로잡고 그것을 계급 권력의 자원으로 만든다. 노예화의 본질은 지식을 위한 계급 투쟁의 현재 상태를 교육의 기구 안에서 반영할 것이다.”8) 라고 주장함으로써 근대적 교육이 계급 권력을 생산하는 일종의 도구임을 역설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워크는 교육을 통한 지식의 습득이“자본이 더러운 일을 하기 위해 "손”을 필요로 할 때, 교육은 기계와 그들이 스스로 발견하는 사회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유용한 손을 훈련시킬 뿐이다.”9) 라고 말하며 교육이 자본 질서를 유지시키는 생산품을 만들어내며 이것을 다시 소비하는 주체를 길러내는 훈육의 장이라고 파악한다. 이는 근대적 교육시스템이 경제적 기능을 부여받은 후부터 교육이 순수한 지식, 국가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기반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경제체제를 순환시키는 노동자 개인을 생산하고 산업에 필요한 지식을 훈련시켜 그녀의 표현처럼 ‘유용한 손’을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의 기능은 현대에 와서 의무 교육의 정규 과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직장의 근속연수는 짧아지고, 점점 디지털화되어가는 업무수행 방식과 산업의 발전에 따라“이제 교육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과정이 되었고, 일하는 삶이 지속되는 한 훈련도 계속된다. 또한, 사람들은 일거리를 집에 가져오며, 집에서 일하거나 반대로 일에서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권력이 이처럼‘무한히 지연되는’ 양식을 취함에 따라 외적인 감시는 내적인 관리(policing)로 대체된다.” 10) 라고 말하는 마크 피셔(Mark Fisher)의 주장은 삶의 많은 부분에서 끝없이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개인의 삶이 벡터 계급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게 하는 일종의 매개체로써 작동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워커의 교육에 대한 논의 중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는 해커계급이 가지는 교육에 대한 양가적인 측면이다. 워커는 해커 계급의 교육에 대해 “해커 계층은 교육과 양면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해커들은 교육이 아닌 지식을 원한다. 해커는 그 자체로 지식의 순수한 자유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교육을 임금 노예로 유도하려는 자본주의 계급의 투쟁에 해커를 적대적인 관계로 몰아넣는다. 해커들은 근로자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서로 다른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으며, 희소성과 경제적 가치를 강화시키는 엘리트주의적이고 계층적인 교육 문화에 빠질 수 있다.”11) 라고 기술했다. 벡터 계급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상정된 해커 계급이지만 노동과 삶의 여러 부분이 중첩되어진 현실과 교육, 지식이라는 굴레 안에서 그들의 저항적 지점을 명확히 분간해 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포착해 낸 것이다. “교육이 ‘현실 세계’에 면역된 안전한 상아탑이기는커녕 자본주의의 사회적 장에 내재한 비일관성을 직접 대면하면서 사회현실을 재생산하는 기관실이 되는 것” 12) 이라는 마크 피셔의 주장은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하게 착종되어버린 디지털 시대 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백터 계급의 체제 밖을 상상하기 위한 유격(裕隔)을 만들어내려면 기존 교육의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수정하여 새로운 교육의 기능을 부여하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영역에서 해킹의 방법론을 창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로써 추상화된 재화들을 다시금 재조직하여 새롭게 실제를 변형시키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해킹이란 어떤 형태로든 지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해커 지식은 그 실천에서 자유로운 정보, 자유로운 학습, P2P 네트워크에서의 결과의 선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해커 지식은 또한 생산적인 계층의 욕망에 열려있고 상품생산에 종속되지 않는 지식의 윤리를 내포한다.”13)
벡터 계급은 교육을 자신들의 재화 가치 창출을 위한 생산자이자 소비자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본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 지적 재산을 생산하는 일군의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수익성 산업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벡터 계급의 지식의 사유화에 대해 워크는“지식은 누구의 재산인가? 경제에서 오직 기능만으로 인정받는 주제를 승인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인가?” 14) 라고 되묻는다. 즉, 하나의 혁신적인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가려진 지식의 창조자들인 해커 계급의 노동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며,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이 처하게 되는 현실에 대해 반문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 학교와 공공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지식의 소유권이 산업의 수단으로 귀속되지 않고 이를 개개인들에게 되돌려주는 방법으로서 다시금 해킹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아야 한다. 체제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해킹은 새로운 윤리적 역할을 부여받고, 개인과 공공의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작동하여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해커의 개념을 그것의 세부 사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더 많은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이 투쟁의 첫 번째 단계이다”15) 는 워크의 지적대로 일반적으로 범죄로 간주하는 해킹이라는 개념의 극복일 것이다. 즉, 하위문화로 취급되는 해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복시켜 이를 교육의 영역으로 이식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백터 계급에 한정되어 소유된 정보재, 금융화 등의 벡터 추상성을 개방시켜 공공으로 이양시켜야 한다. 이제 처음의 출발점 돌아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볼 차례다.
“과연, 학교는 해킹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도둑질해야 하나?"
2021, <우리는 모두 도둑인가? Are We All Thieves>, 프로젝트를 위해 작성한 글
d/p, 소환사, 새서울기획,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공간지원, 우리들의 낙원상가, 서울
1)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p.15.
2)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p.18.
3) 위의 책, p.21.
4) 위의 책, p.19.
5) 위의 책, p.15.
6) Smythe D.W, Communications: Blindspot of Western Marxism, Canadian Journal of Political and Society Theory, Vol.1, 1977, p.9.
7) 조너선 크래리 (Jonathan Crary), 김성호 역, 『24/7 잠의 종말』, 문학동네, 2014, p.26.
8) 위의 책, p.33-34.
9) 위의 책, p.34.
10) 마크 피셔 (Mark Fisher), 박진철 역,『자본주의 리얼리즘』, 서울: 리시올, 2018, p.46.
11)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p.36.
12) 마크 피셔 (Mark Fisher), 박진철 역,『자본주의 리얼리즘』, 서울: 리시올, 2018, p.52.
13)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위의 책, 2004, p.42.
14)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p.41-42.
15) 맥켄지 워크 (McKenzie Walk), A Hacker Manifesto, p.44.